티스토리 뷰
목차
선율 위에 쌓아 올린 시간, 그리고 멈추지 않는 이야기
1. 사라 장의 삶
(1) 바이올린 신동, 음악이 일상이 된 삶
사라장, 한국 이름 장영주. 그녀는 1980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음악 전공자였기에, 영주의 삶에서 음악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작곡을 전공한 어머니, 바이올린을 전공한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그녀에게 음악은 특별한 것도, 강요된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일상이었다.
다섯 살 무렵, 그녀는 우연히 바이올린을 접했다. 장난감처럼 손에 들었던 작은 악기가, 아이의 마음에 파고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이올린은 어린 영주에게 익숙한 음의 친구였고, 그녀는 악기를 끼고 노는 법을 누구보다 빨리 배웠다. 그 이후로, 그녀의 인생은 명확한 한 줄기로 정해졌다. 음악, 그리고 바이올린.
일곱 살 무렵부터 그녀의 연주는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단순한 ‘신동’의 범주를 넘어선 표현력이 눈에 띄었다. 악보에 적힌 음들을 정확히 연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감정선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있었다. 마치 어른의 감정을 어린아이가 통째로 흡수해 표현하는 듯한 연주였다.
(2) 무대에 오른 아홉 살, 그리고 커티스 음악원
1991년, 그녀는 음악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만 아홉 살. 커티스 음악원(Curtis Institute of Music)에 입학했고, 같은 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세계 클래식 무대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커티스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로 유명하다. 입학생은 소수 정예이며, 전액 장학금이 원칙이다. 무엇보다 연령보다 재능을 우선시하는 까다로운 오디션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장영주의 입학은 학교 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바이올린 교수 도로시 딜레이(Dorothy DeLay)와 펠릭스 갈리미르(Felix Galimir) 밑에서 본격적인 음악 수학을 시작했다.
그녀의 뉴욕 필하모닉 데뷔 무대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긴장감보다는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태도, 나이답지 않은 무대 장악력, 그리고 무엇보다 한 음 한 음에 혼을 담아 연주하는 진심이 청중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그녀를 “바이올린계를 뒤흔들 어린 거장”이라 불렀고, 클래식 음악계는 또 하나의 별을 발견했다고 들떴다.
하지만 그 뒤에는 그 나이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무게도 함께했다. 수많은 인터뷰, 끝없는 연습과 여행, 어린 시절을 송두리째 앗아갈 만큼의 스케줄. 그녀는 후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는 그냥 매일 연주하고 연습하고, 자고 일어나면 또 연주하는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 돌아보면, 참 대단한 시간을 살아냈구나 싶어요.”
(3) 신동을 넘어 예술가로, 동시대의 예술 크리에이터로
사라장은 단지 ‘어린 천재’라는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줄리어드에서의 학업과 꾸준한 무대 경험을 통해, 그녀는 ‘테크닉의 화려함’이 아니라 ‘음악의 진심’을 더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특히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면서 그녀의 음악은 역사적 깊이감이 더해져 한층 더 성숙되었다. 그녀는 유럽의 유명 필하모닉, 즉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의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굉장한 수준의 음악적 해석을 보여줬다. 그녀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들려주는 맑은 호흡과, 브람스 협주곡에서 들려주는 내면적 고요, 시벨리우스 협주곡에서의 서늘한 기운 속의 강인함은 그녀의 음악적 통찰이 성숙함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주를 “설명하려 하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연주”라고 평가한다. 테크닉이 뛰어난 연주자는 많지만, 감정선을 청중과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연주자는 드물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는 굉장히 귀하다. '본능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연주' 는 사라장이 가진 가장 큰 무기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그녀는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그녀는 유튜브,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했고, 비클래식 장르와의 협업에도 열린 자세를 보여줬다. 그녀는 음악을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감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 크리에이터로서 친근감도 느껴진다.
2. 사라장의 내일
무대 위의 사라장과 무대 밖의 장영주는 분명 다른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모습 사이에는 일관된 진심이 흐른다. 그 진심은 때로 음악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때로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응원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꾸준히 세계 각국에서 마스터 클래스와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음악을 통해 누군가가 자기 감정을 이해받는다고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라고 말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음악을 통해서 느꼈던 위로와 이해를 다음 세대들도 느낄 수 있도록 되돌려주는 중이다.
사라장은 여전히 세계 곳곳의 무대에 서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전과는 이전과 약간 달라졌다. 바로 한 음 한 음을 정확히 짚느냐에 집중하는 것보다 , 그 음에 어떤 마음을 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누구보다 잘 안다.
미래의 사라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지금보다 무대에 덜 서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와 음악은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음악 안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으며, 또 다른 형태의 예술적 발언으로 세상과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라장의 삶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멈춤 대신 쉼표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의 바이올린은 앞으로도 그렇게,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