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오페라 무대 위에서 세상을 울리고, 무대 밖에선 예술로 세상을 품는 사람. 조수미의 인생은 끝없는 연습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노래는 나눔'이라는 철학으로 빚어진 진심의 기록이다.
1. 소프라노 조수미의 인생스토리
(1) 음악은 운명처럼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수미는 음악이 일상인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음악 교사로서 클래식과 동요, 국악을 두루 들려주었고,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조용히 응원해 주는 따뜻한 존재였다. 조수미는 네 살 때 피아노 앞에 앉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음감을 타고났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물론, 동요 콩쿠르에 나가 상을 휩쓸며 무대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란 그녀는 처음부터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성악가를 꿈꿨던 건 아니었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그녀는, 어느 날 친구가 받던 성악 레슨을 우연히 따라가며 자신의 ‘목소리’가 악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날 이후 조수미는 성악의 세계에 눈을 떴고, 고등학교 진학 시기에 서울의 예술영재들이 모이는 선화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성악 훈련을 시작했다. 성악 선생님은 그녀의 고음과 탄력 있는 발성에 놀라며 "너는 무조건 해외 무대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조수미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로 진학한 그녀는 클래식의 기초부터 철저히 배웠고,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도 연습실 불이 꺼질 때까지 노래했다.
그러나 진짜 도전은 유학 이후였다. 그녀는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들어가며 유럽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문화도 언어도 낯설었지만, 그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12시간 이상 연습하며 “목소리 하나로 이 세상에 나를 증명하겠다”는 각오로 매일을 버텨냈다. 까다로운 스승 마리아 알바디는 한 음절도 그냥 넘기지 않았고, 이탈리아 벨칸토 창법의 미세한 호흡까지 그녀에게 체득하게 했다.
(2) 세계가 감탄한 목소리, 조수미의 눈부신 비상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데뷔한 조수미는 첫 무대에서 언론의 극찬을 받는다. "작은 체구에서 믿을 수 없는 고음이 뻗어 나왔다", "그녀의 질다는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라는 평가가 이어졌고, 이 한 번의 무대로 그녀는 유럽 오페라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무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코벤트 가든, 빈 슈타츠오퍼, 라 스칼라 극장, 베를린 도이체 오퍼 등에서 주역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벨칸토 창법이 중요한 도니제티와 벨리니의 작품에서 그녀는 마치 캐릭터와 하나가 된 듯한 몰입을 보여주었다. 기술적인 완성도뿐 아니라, 그 배역의 감정선과 심리를 정교하게 표현하는 연기로 "조수미의 오페라는 노래를 넘어 연기였다"는 평을 들었다.
1993년, 이탈리아 음악평론가협회가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프랑코 아비아티 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하면서, 그녀는 ‘성공한 아시아 성악가’라는 타이틀을 넘어, ‘세계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로 인정받는다. 이후 50개국 이상에서 1,200회 넘는 공연을 소화하며 ‘가장 바쁜 소프라노’로 불리게 된다.
조수미는 순수 클래식 외에도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영화 음악, 크로스오버, OST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한다. 영화 ‘미션’의 테마곡 ‘넬라 판타지아’를 부른 그녀의 음원은 클래식 팬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마음까지 사로잡았고, 국내외 수많은 공연에서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2. 조수미의 삶의 철학, 그리고 예술의 진짜 의미
조수미는 “노래는 나의 고백이며, 무대는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무대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닌, 진심을 담아내는 성소이자, 관객과 마음을 나누는 장이다. 지금도 그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발성 훈련을 하며, 무대에 오를 땐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면 어떻게 부를까’를 되뇌며 노래한다.
화려한 수상과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처음처럼’이라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공연을 소화하면서도 한 번의 컨디션 난조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오늘 노래한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녀는 예술의 진짜 가치는 ‘나눔’이라고 믿는다. 2003년, 유네스코 평화예술가로 임명된 그녀는 이후 난민 문제, 지구환경, 장애 아동 돕기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국내에서는 군부대, 소외 계층, 병원 등에서도 재능기부 공연을 이어가며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조수미는 여전히 세계를 무대로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은 단지 기술의 결과물이 아닌, 세상을 향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진심이다.
그녀의 이름은 단지 ‘위대한 소프라노’를 넘어, 한 시대를 관통한 예술가의 영혼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