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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주미 강이라는 이름은 단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한 줄의 표현으로는 결코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녀는 음악이라는 예민하고도 단단한 세계 속에서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면서도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예술적 진정성과 깊이에 집중했고, 음악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에 늘 조심스럽고 치열했다. 이 글은 그녀가 어떻게 음악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왔는지를 따라가 본다. 클라라 주미 강이라는 사람은, 결국 ‘자기 음악에 책임지는 태도’로 기억될 예술가다.
1. 클라라 주미 강의 삶
(1) 성장의 궤적 속에서 태어난 음악
클라라 주미 강은 1987년 독일 만하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유명한 성악가로, 어릴 적부터 음악은 그녀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었다. 세 살 무렵,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을 손에 쥐었고, 네 살에 만하임 국립음대 예비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일곱 살에는 줄리어드 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남윤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뮌헨 국립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을 사사했다.
그녀의 학력을 들으면 '아 엘리트코스로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녀의 성장은 단순히 ‘엘리트 코스’의 집합이 아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과는 전혀 다른 리듬 속에서 자신의 감성과 언어를 키워야 했고, 너무 이른 나이에 '천재 소녀'라는 무게 있는 수식어를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마치 오래된 그림자처럼 조용히 옆에 두고 어린 나이에 누리는 조명을 낭비처럼 쓰지 않았고, 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차분하게 실력을 쌓아갔다. 삶과 음악, 외부와 내면의 경계선에서 균형을 잡으며 스스로를 음악가로 만들어 나간 셈이다.
2. 클라라 주미 강의 음악적 고집과 진심
(1) 화려함보다 깊이를 택하다
클라라 주미 강은 언제나 무대보다 음악에 더 집중해온 연주자다.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멀리했다. 방송 출연도 거의 없고, 언론과의 접촉도 제한적이다. 그 대신 무대 위에 오르기 전까지 몇 주, 때로는 몇 달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보를 해석하고, 음악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데 몰입한다. 그녀의 연주는 듣는 이를 압도하기보다는, 조용히 마음을 감싸 안는 듯한 울림을 준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연주는 제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저는 음악으로 저를 드러내고 싶어요. 말로 하지 못한 걸 바이올린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이 말 한마디에서 그녀의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녀는 음악을 자기만의 언어로 이해하고, 소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빠르고 눈에 띄는 곡보다, 복잡한 감정선을 따라가야 하는 곡들을 더 즐긴다. 브람스의 낙담, 바흐의 평온, 슈베르트의 쓸쓸함 같은 것들을 그녀는 놀랍도록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
이런 선택은 때때로 ‘대중적이지 않다’, ‘연주가 너무 조용하다’는 평가를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클라라 주미 강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들의 기대보다,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진심에 더 충실하다. 그래서 그녀의 연주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고, 한 번 들은 청중이 오래 기억하게 된다.
(2) 음악적 고집이 만들어낸 진정성
클라라 주미 강의 연주는 흔히 ‘절제’라는 단어로 설명되곤 한다.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 안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절제 너머에 있는 고집스러운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단 한 음을 연주하기 위해 수없이 고민하고 되뇌며, 마음속으로 소리를 그려낸다. 그녀가 말하듯, “청중이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더라도, 나 스스로 그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기술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바이올린과 하나가 되어 연주하는 순간, 자신의 삶 전체가 녹아든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연주에는 꾸며낸 감정이나 전략적인 연출이 없다. 오히려 아주 인간적이고 조용한 진심이 담겨 있다. 때로는 상처받은 사람처럼, 때로는 오래된 친구처럼 그렇게 청중 곁에 다가온다.
예술가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자신답게 사는 것’ 일지 모른다. 특히 음악이라는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유행이 있고, 비교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경쟁이 끊임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클라라 주미 강은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문법으로 음악을 해왔다. 그렇게 묵묵히 쌓아온 시간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클라라 주미 강의 음악은 한 번 듣고 박수를 보내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듣고 난 뒤에도 잔향이 남고, 시간이 지난 뒤 문득 떠오르게 되는 그런 음악이다. 그녀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동시에 음악이라는 언어로 마음을 이야기하는 한 사람이다. 고집스러울 만큼 자기 안의 진심을 지켜온 예술가. 바로 그것이 우리가 그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